[ 한밤의 묘지기 2화 ]
[등장 캐릭터 : 키류 쿠로, 시노 하지메]
[시기 : 겨울]
쿠로 : 오, 춥군... 눈이 꽤 많이 쌓였는걸. 올해는 기록적인 폭설이라고도 하니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 아가씨. 하하. 이 시기에 가라테부 연습을 하면 맨발이라 발이 얼어서「시렵다」기보다「아플」 정도야. 진짜 수행이라는 느낌이 들지. 좋아서 하는 거니 불평도 못 하지만 응? 가라테랑 바느질 중에 어느 게 더 좋냐고? 아가씬 가끔 어려운 질문을 하는군... 음~ 둘 다 좋아서 시작한 건 아니다만. 바느질은 어렸을 때 어머니께 배워서 자연스럽게 할 줄 알게 됐고... 뭐, 나도 중학생 땐 거칠게 살았으니까. 싸움도 부단히 했거든. 옷이 꽤 잘 찢어져서 말이야. 친구들은 다들 가난해서 옷을 새로 살 돈도 없었으니, 내가 수선해줬지. 그러다가 특공복 같은 것도 부탁받아 만들곤 했는데,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가 생겨 버렸지 뭐야... 덧붙이자면 가라테는 아버지가 유단자셔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휴일이 되면 배우곤 했어. 그때 배운 기술이 실제로 불량배들 사이에선 유용했거든... 나도 멍청이라 우쭐해져서 이왕에 하는 거 열심히 해볼까 한 거야. 중학생이 다 그렇지 뭐. 내가 기껏 배운 걸 그렇게 엉뚱한 곳에 써먹은 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과도 같았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바보 같은 짓이었어. 난 불효자야. 이렇게 더럽혀진 손으로 누굴 지키냔 말이야....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아이돌의 의상을 만드는 것도 원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겠지..
하지메 : 흐앗?!
쿠로 : ...응? 시노잖아. 덤불 속에서 뭘 하는 거야?
하지메 : 아, 키류 선배셨군요. 갑자기 커다란 게 나타나서 곰인가 했어요.. 깜짝 놀랐네요♪
쿠로 : 이 주변엔 곰 같은 건 없어. 아니, 산 쪽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설령 길을 잃고 내려와도 내가 처리할 테니 안심해.
하지메 : 와, 그럼 오늘 저녁 식비가 굳겠네요. ...곰 고기는 맛있나요?
쿠로 : 모르겠다만. 가끔 넌 엄청난 소릴 한단 말이지... 그보다 놀라게해서 미안하다.
하지메 : 아니에요. 앗, 안즈 씨도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두 분 다 지금 귀가하시는 건가요?
쿠로 : 그래. 또 도장에서 바느질을 했거든. 좋은 시간이었어. 이 담요만 반납하고 아가씨를 집까지 호위할 예정이야. 너도 만난 김에 함께 데려다줄까?
하지메 : 에헤헤. 말씀은 고맙지만 전 아직 일이 남았어요.
쿠로 : 그래. 이 추위에 고생이 많네. 뭣하면 도와줄까?
하지메 : 앗~ 감사하지만... 폐가 되지 않을까요?
쿠로 : 그럴 턱이 있나. 이런 추위 속에 널 두고 그냥 가면 니토한테 혼날 거다. 그 녀석, 곧잘 화낸단 말이지.
하지메 : 아~ 알아요. 니~쨩은 제겐 언제나 상냥하시지만요. 에헤헤. 그나저나 힘을 쓰는 일은 익숙하지 않아서 고생 중이라.. 키류 선배만 괜찮으시다면 도와주셨으면 해요.
쿠로 : 그럼 도와줄게. 젊은이는 사양하는 거 아냐. 언제든지 의지해도 돼, 시노. ..그런데 힘을 쓰는 일이라니, 뭔데? 장작이라도 줍고 있나?
하지메 : 아뇨,「교내 아르바이트」로 창고 정리를 하고 있어요. 곧 연말인데다가 겨울방학이잖아요? 그동안 사용하지 않는 의상 같은 걸 이 안쪽의 창고로 옮기는 일이에요. 전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도난 사건이 있었대요... 특히 의류는 창고에 엄중히 보관하는 모양이에요. 겨울방학 땐 거의 아무도 없으니까 도둑이 들 때가 있나 봐요.
쿠로 : 아, 그렇겠군. 잘 나가는 아이돌의 의상이라면 마니아에게 비싸게 팔릴 테니까. 그보다 정말로 힘쓰는 일이잖냐... 왜 그런 일을 시노가 하고 있는 거지?
하지메 : 저 꽤 힘세요. 게다가 역시 의상 같은 건 잘 아는 사람이 다뤄야지, 안 그러면 상하잖아요. 그냥 놓아두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니까요. 에헤헤. 키류 선배에겐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지만요...♪키류 선배나 다른 모든 분들이 마음을 담아 만들어주신 의상이에요. 소중히 잘 보관해야죠... 전 빨래를 자주 해서 의류 취급법을 숙지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쿠로 : 그랬군. 내가 만든 의상을 소중히 여겨 준다니 고마운걸.
하지메 : 에헤헤. 목표치만 높고 실력은 안 돼서 계속 헛돌고 있지만요. 정말 옮겨도 옮겨도 끝이 없더라고요. 우왕좌왕 뛰어다니느라 겨울인데도 땀이 났어요.....♪
쿠로 : 몸이 차가워질 거다.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해. 아 정말,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네. 나 참. 약할수록 살기 힘든 것이 세상의 섭리라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그렇다면 내가 나서야겠군. 역시 도와줄게. 날 믿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너흴 응원하고 있다. 「Ra*bits.」
하지메 : 네.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기쁘지만... 우선 안즈 씨를 집까지 바래다주세요. 흐앗, 안즈 씨도 도와주시려고요? 앗~ 기쁘지만 힘쓰는 일인데요?
쿠로 : 뭐 어때. 이 정도는 돕게 해 달라고, 그게 선배들의 낙이니까... 그렇지? 아가씨♪다 함께 하는 편이 빨리 끝나기도 하고, 의상을 옮기는 건 힘들지 몰라도 보관 작업은 아가씨도 할 수 있어. 적재적소에서 척척 끝내자고. 아직 밤이 되기까진 시간도 있고, 빨리 끝내면 빨리 돌아갈 수 있잖아. 어려울 땐 서로 도와야지, 시노. 곧 크리스마스기도 하니 착한 일을 하면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 같은 나쁜 아이도 말이야.
스카우트 ! 녹턴